◆ 경제기사 이렇게 읽어요 ◆
이번 11월은 국내 쇼핑 마니아들에게 `불타는 한 달`이었습니다. 신문 지면을 `블랙프라이데이` `광군제` `해외직구(해외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국내에서 바로 구입하는 것)`와 같은 단어가 도배하고, 어디에서 어떤 상품이 몇 % 할인돼 팔린다는 정보 게시물이 인터넷을 가득 메웠습니다.
미국에서 유래한 블랙프라이데이는 검은색을 뜻하는 `블랙`과 금요일을 뜻하는 `프라이데이`의 합성어입니다. 여기서 검은색은 한국에서 말하는 `흑자(黑字)`와 일맥상통합니다. `적자(赤字)`, 즉 붉은 글자 일색이던 유통업체 회계 장부가 이날을 기점으로 검은 글자, 즉 흑자로 바뀐다는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블랙프라이데이 날짜는 11월 넷째 주 금요일, 미국 명절인 추수감사절 바로 다음날입니다.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과 같은 최대 명절로, 소비자들의 구매가 한데 몰리는 대목입니다. 당연히 유통사들은 추수감사절 대목을 잡기 위해 상품을 가득 쌓아 놓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소비가 많아도 팔리지 않은 물건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남은 물건은 그대로 재고관리비용을 유발하므로, 오래 가지고 있을수록 유통사에 손해가 됩니다. 머지않은 새해를 맞아 새 물건을 들여놓기 위해 창고를 비워둘 필요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들은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팔아치우는 한이 있더라도 연말 이전에 재고를 비우고자 박리다매에 나서게 됩니다.
중국 광군제는 `자연스럽게 퍼진` 블랙프라이데이와 달리 중국의 한 기업이 시작하고 전파한 쇼핑 이벤트입니다. 중국에서 11월 11일은 숫자 1이 4개 겹친 날이라 해서, 애인이 없는 솔로나 싱글족을 위로하는 일종의 비공식 기념일로 취급돼 왔습니다. 1990년대 중국 난징 지역 대학생들이 이날을 처음 `독신자의 날`로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와 광군제가 오늘날 각국 소비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유통 시장조사업체 어도비애널리틱스가 아마존 등 주요 온라인 쇼핑몰 80곳의 거래를 추적한 결과, 이들 유통사 80곳이 지난해보다 23.6% 늘어난 매출 62억2000만달러(약 7조250억원)를 올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국 광군제는 올해 또다시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습니다. 알리바바의 온라인쇼핑몰 티몰에서 11일 하루 동안 집계된 총매출은 2135억위안(약 34조7100억원)을 넘어 지난해 기록한 1682억위안 대비 26.9%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듯 소비자와 유통사 모두가 함박웃음을 짓는 행사인 만큼 한국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해 `한국판 블프`를 꾸미려는 시도가 진행 중입니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은, 지난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열렸던 `코리아세일페스타`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 행사는 론칭 4년째인 올해까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올해 행사에는 국내 참여 기업이 지난해 446곳에서 360여 곳으로 되레 줄었습니다. 정부 지원마저 지난해 51억원의 67% 수준인 34억5000만원으로 떨어졌습니다.
거창한 이름과 달리 할인폭이 평소와 별 다를 바 없어 실망하기 일쑤라는 게 소비자들의 목소리입니다. 50~90% 할인된 상품을 왕왕 만나볼 수 있는 블랙프라이데이·광군제와 달리 10~30% 수준의 `실망스러운` 할인율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진정한 `한국판 블프`는 오히려 민간에서 그 조짐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를 즈음해 G마켓·옥션·11번가·쿠팡 등이 일제히 진행한 온라인 쇼핑 행사들이 그것입니다. 지난해 진행된 행사들이 올해 규모가 더욱 커졌고, 오프라인 유통사인 이마트까지 `블랙이오`란 이름으로 행사를 벌여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행사를 연 한 온라인몰 관계자는 "블프 시즌에 부쩍 느는 해외직구 수요를 국내에서 흡수하려는 목적으로 이벤트를 철저히 준비했다"며 "온라인몰 간에도 경쟁이 붙었지만, 오프라인에서 이마트까지 참여하면서 예상보다 행사 규모가 훨씬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정부가 주도하는 전시성 행사보다 진정한 소비 욕구를 좇을 수 있는 시장이 승리한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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